다시, 꿈을!
센터판 소장/서기현
거의 5년째, 무려 1700여일 넘게 우리들은 광화문 역에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농성장을 만들고 시민들을 상대로 서명을 받고 있습니다. 2,3주에 한번 가는 것도 고역이어서 여간 귀찮은 게 아니지요. 그래도 503번분 맹활약 덕에 생각보다 빠르게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희망으로 꾸역꾸역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힘든 것은 따로 있는데요. 그렇게나 자주 가는 광화문 역에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서울의 엘리베이터가 없는 지하철역 9곳 중 1곳이라는 겁니다. 물론 아예 없는 것은 아니고 승강장에서 대합실로 올라오는 곳은 리프트가, 대합실에서 지상까지는 엘리베이터가 있습니다. 더 환장하는 것은 농성장이 있는 쪽은 교보문고 방향인데 그쪽 계단에는 리프트가 2대나 있다는 겁니다. 휠체어가 3대만 밀려있어도 30분은 우습게 지나갑니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그나마 엘리베이터가 잘 되어있는 1호선 종각 역에 내려서 15분을 걸어가 광화문 역 해치마당을 통해 농성장으로 갑니다. 그래서 광화문 역 보다는 종각역이 더 익숙할 정도입니다.
4계절 내내 거의 종각 역을 이용하다보니 역의 풍경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요. 몇 년 동안 그 일대에서는 늘 공사를 했습니다. 역의 안과 밖 모두에서요. 그런데 그 공사가 작년 여름 쯤 끝나더군요. 가장 좋았던 것은 지상으로 나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하나 더 생겼다는 겁니다. 원래는 3번 출구 (종로타워)쪽 1개만 있어서 보신각에 집회라도 있는 날이면 참 많이 기다려야 했었는데요. 공사가 끝난 후에는 1번 출구에도 엘리베이터가 생겨서 나갈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늘어났습니다. 더군다나 새로 생긴 엘리베이터는 광화문 역 쪽과 가까워서 요즘에는 그 곳만 이용합니다. 못해도 전보다 2분가량은 걷는 시간이 줄어듭니다.
그런 종각 역을 자주 드나들다 보면 서울 역만큼은 아니지만 심심치 않게 노숙인들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특히 3번 출구 쪽 엘리베이터 앞에 조금 넓은 공간이 있는데 겨울이면 2,3명 정도는 박스나 신문지를 깔고 누워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종각 역 리모델링 공사가 끝나고 3번 출구 쪽으로는 안 가서 노숙 인을 볼일은 없겠지 라고 막연하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특이하고 의아한 광경을 자주 보게 됩니다.
승강장에서 대합실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비상 개찰구 - 일명 개구멍을 지나 1번 출구 쪽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확실히 리모델링을 한 구역은 분위기가 밝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1번 출구 쪽 신축 건물의 지하층하고 직접 연결하는 통로가 많았습니다. 그 통로는 고급(?) 식당가나 상점가로 가게 되어서 칙칙한 분위기로는 매출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 일겁니다.
그 근처에 식수대가 있는 벽에 노숙인인 듯한 사람들이 한쪽 벽에 붙어 있었습니다. 흔히 노숙인은 신문지나 박스를 바닥에 깔고 않아있거나 누워있기 마련인데, 그 사람들은 잔뜩 얼어붙은 모습으로, 누군가를 불안하게 기다리는 눈빛으로, 그러나 고단함이 서린 듯 한 표정으로 서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무심코 지났지만 한 번 두 번 매번 두세 명씩 마주치면서 궁금했습니다.
'그들은 왜 앉지도 못하고 있지? 리모델링한 벽이 너무 깨끗해서? 역무원이 무서워서? 시민들에게 창피해서?'
저는 여느 노숙인들의 모습과는 다른 점을 보면서 처음에는 머릿속에 물음표만 떠다니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무거워지고 끝내는 멍해지고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왜 저 벽으로 내몰렸을까요? 왜 편히 앉아 있을 수도 없는 걸까요? 왜 그렇게 불안한 눈빛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까요?
내 마음 대로 가정을 해 보면 그저 게으른 사람일 수도,.. 할 수 없이 빚을 진 사람일 수도,.. 심지어 알콜 중독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때는 그들도 누군가의 어여쁜 자식이었고 사랑스러운 연인이었고, 든든한 어버이였을 것입니다.
유사 이래 가계부채 최대, 체감 경기 최악, 창업 80% 폐업, 사교육비 최대, 빈부격차 양극화 등 이른바 중산층 가정이 붕괴하여 극빈층으로 떨어질 이유는 정말 많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한번 추락하고 난 뒤, 다시 일어설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요?
그런 기회를 줄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복지일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바탕이 되는 것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의한 수급권입니다. 하지만 과연 이 나라는 무엇을 했나요? 친척의 수입과 재산까지 하나하나 따져 부양의무제의 족쇄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포기시키지 않았나요? 행제 복지원 같은 말도 안 되는 시설에 가두어 사회와 격리시키고 죽음으로 내몰지 않았나요?
도대체 언제까지 내 가난함을, 일 할 수 없음을, 버림받았음을, 장애를, 질병을, 고통을!!! 증명해야하나요?
5월 초에는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것입니다. 누가 대통령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부양의무제 폐지를 비롯한 수많은 복지 공약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런 공약들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몇 조 부터 몇 십, 몇 백조가 필요하다고 벌써부터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왜 돈과 효율성, 생산성을 먼저 따질까요? 가난을 증명하지 못해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음을 모르는 걸까요? 아니면 애써 외면하는 것일까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나라는 아무리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누구나 굶지 않고 따뜻한 곳에서 쉬면서 나름의 희망을 다시 꿈꿀 수 있어야합니다.
그래서 저는 아직도 그리고 여전히 광화문 농성장에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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