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장애가 있지만 비장애인들과 경쟁하며 사회생활을 하였다. 경쟁에서 항상 우의를 보이며 승승장구 하였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친구들이 내가 지체 장애가 있는 걸 알고 놀리며 장난질하였다. 그때만 해도 난 내가 장애가 있다는 걸 몰랐고 철이 들면서 알게 되었다. 창피해서 학교를 점점 멀리하고 운동에만 전념 하여 힘이 없는 다리에 근육을 키웠다. 다행이도 걸음걸이를 교정 할 수 있었고 이후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나는 장애가 있다고 애기하지 않으면 잘 몰랐고 힘든 나날이었다. 자존심 때문인지 그땐 왜 그렇게 떳떳하지 못했을까...지금 생각하면 정말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장애가 무슨 죄 인양...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 않나... 누구도 장애를 배제할 수 없다!
난 사회생활을 하면서 동료들에게 나의 장애를 숨기며 살았다. 어린 시절 기억 때문에 나 역시도 장애가 심한 분들을 만나면 조금 멀리하기도 하였다. 지금 생각하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어느 날 나에게 또 다시 시련이 왔다. 뇌경색... 몸이 마비가 되었다. 재활원을 전전하며 조금씩 회복하였다. 이때 정말 내가 경험하지 못한 나보다 더 심한 분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러다가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연민의 정을 느끼기까지 하였다. 건강을 어느 정도 회복하여 퇴원을 하게 되었지만 나에겐 장애가 조금 남았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원래하던 일을 하려고 했으나 건강이 허락하지 않았다.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찾아보다가 장애인 ‘행정 도우미’라는 일을 하게 되었다. 운명처럼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 이라는 곳에 취업을 하게 되었고 조금씩 경험하지 못한 일을 배워나갔다.
어느 날 광화문에서 집회가 있다고 센터 전 직원이 출격하였다. 처음엔 어떤 집회인지 몰랐다. 조금 궁금하기도 하고 장애를 가진 분들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생겼다. 알고 보니 장애인 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해 정부에 호소하는 집회였다. 전국에서 많은 장애인들이 참석하였다. 휠체어를 탄 분들이 많이 있었고 그중엔 매스컴에서 본 듯한 분도 보였다. 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고 여기저기 둘러보며 궁금해 하던 중 집회가 시작되었다. 광화문에서 청와대까지 행진한다고 하였고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정확히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나는 우리 센터 직원들을 따라 집회에 귀를 기울였고 집회를 마치고 청와대를 향해 행진이 시작되었다. 이때만 해도 난 그냥 덤덤했다. 조금 후 정말 몸이 불편한 분들이 모두 휠체어에서 내려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내렸다. 가녀린 소녀에서부터 중장년까지 있었다. 거기에 우리 센터 소장님도 보였다. 오체 행진을 한다고 하였고 조금 후에 나는 그게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차가운 아스팔트에 걷지 못하는 분들이 온몸으로 구르기 시작했다. 나는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고 온 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이분들이 정말 온몸으로 정부에게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순간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꼭 간절히 호소해야만 하나, 정부는 복지국가를 외치면서 정작 장애인복지는 존재하는가... 겨우 몸 하나 손 하나 발 하나 지탱할 수 없는 이분들이 휠체어를 버리고 목숨 걸고 차가운 아스팔트에 몸을 굴려서라도 정부 당국자를 만나서 ‘우리들의 간절한 소망을 들어 주소서...’하는 몸부림이었다. 정말 말로는 어떤 표현도 할 수 없었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정신을 가다듬고 우선 우리 센터 소장님을 찾았고 한참을 헤매다 중간쯤 소장님을 발견했다. 무거운 마음으로 다가갔는데 무릎보호대가 벗겨져서 아파했다. 그러나 본인 손으로 보호대를 올리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본인보다 뒤쳐진 동지들을 걱정하면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뭐라 독려하였다. 소음 때문에 무슨 소린지 모르지만 아마도 ‘동지 여러분 조금만 더 힘을 내십시오’ 하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2시경 광화문 앞에서 출발해 어느덧 해가지고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약 50미터를 기고 굴러서 혼신의 힘을 다해서 앞으로 나아갔지만 청와대로 가는 길은 의경들에 의해 막히고 말았다. 기막히고 안타까운 마음에 나는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마침 퇴근 시간이라 시민들이 많이 지나갔다. 그 중 한분이 지껄이는 말이 ‘이것들은 뻑하면 지랄이야’ 하며 지나갔다. 나는 화가 정말 많이 났지만 참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속으로 소리쳤다. 저분들이 내 가족이라도 그렇게 말할 수 있나 당신도 언제든지 장애를 입을 수 있다 하고 울분을 삭혔다. 한방 먹여주지 못해 정말 후회스러웠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기력한 나에게 채찍질 하였다. 순간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순간 나는 전태일 열사가 생각났다. 나도 의류업계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더욱 생각났다. 그분은 아마도 지금 내 심정과 같은 생각으로 온몸에 신나를 붓고 분신을 하였을 것이다. 아마도 이 땅에 모두 평등한 사회를 위해서 한 몸 바쳤으리라 생각된다.
따라서 지금 우리 장애인들도 평등 사회를 위해서 온몸으로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몸부림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와대로 가는 길은 막혔다. 하지만 우리 장애인, 활동가들 모두 소리쳤다. 장애인 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제 폐지! 꼭 장애인 활동가님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기원하면서 정부 관계자님들이 귀 기울여 주시기 바라면서 이 글을 올린다.
“꿈은 꼭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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