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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장애인인권영화제 참여기
자원봉사자 / 황하정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 매거진 구독자분들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한신대학교 재활학과에 2학년으로 재학 중인 황하정입니다. 지난 8월 30일에 개최된 제3회 성북장애인 인권영화제 자원봉사를 하며 느낀 점을 나누기 위해 글로 찾아뵙게 됐습니다. 화려한 글 솜씨는 아니지만, 영화제에서 받은 감동과 생각을 솔직하게 나눠보려고 합니다.
[ 장애인 인권 영화제? 나도 갈래! ]
학교에서 배우는 이론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장애인이 사는 삶과 환경에 대해 알고 싶어 지난 7월 활동보조인 교육을 듣게 됐습니다. 영화를 보기 위해 집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지하철을 타고 이동해 영화관에 들어가기까지, 전동 휠체어를 이용하시는 강사님은 영화를 보려면 장시간 사투를 벌여야 한다고 과정을 설명하셨습니다. 힘들게 영화관에 도착하더라도 맨 앞에 위치한 장애인 좌석.. 하나도 쉬운 일이 없었습니다. 영화를 통해 재충전하는 것이 목표지만 장애인들은 체력과 감정 소비를 해야 하는 현실이 답답했습니다. 힐링 할 수 있는 문화생활을 하기 위해서 어떤 점들이 개선되어야 할까 고민하던 중 성북장애인 인권영화제 자원봉사자 모집 글을 보고 신청하게 됐습니다.
[행사장에 도착해서 행사장을 떠나는 순간까지 배움의 연속]
행사 시작 전, 의자 배치를 하고 자리 안내를 하고 다과를 세팅하는 것까지 모두 장애인의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휠체어 이용자분과 뇌성마비 장애가 있으신 분이 어떻게 하면 편하게 휴지를 사용하실까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여 배치하고. 활동보조인 선생님들과 동행하시는 분들을 위해 휠체어가 위치할 공간은 비워 놓고 옆에는 의자를 배치해 휠체어 이용자분과 활동보조 선생님이 함께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신경 쓰지 않는다면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을 센터판에서 장애인분들과 함께 동고동락하시는 선생님들 눈에는 다르게 보였던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용하시는 분이 편할지’ 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장애인 문화생활을 개선하는데 첫 번째 숙제인 것 같습니다.
[ 장애인등급제 • 부양의무제 폐지 광화문 농성 1842일 차 그리고 ]
상영한 모든 영화가 진한 감동을 주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감명 받았던 영화는 장애인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에 대한 1842일 동안의 광화문 농성을 담은 영화였습니다. 등급재평가로 인한 등급 하향으로 활동보조를 지원받지 못해 자택에서 숨을 거둘 수밖에 없었던 일들이 그저 남의 일처럼 다가오지는 않았습니다.
2년 전 어머니께서 등급재평가를 받으실 때 제가 의사선생님께 썼던 편지가 떠올랐습니다. 혼자 집에서 생활하시기 어려웠던 어머니께 반드시 필요한 활동보조인을 지원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 결정되는 평가였기 때문에 간절한 마음으로 의사선생님께 편지를 썼었습니다. 하지만 평가 과정과 결과는 잔혹했습니다. 의사선생님들은 펴지지 않는 어머니의 손을 어떻게든 피려고 무력을 사용했고 어머니는 아픔에 소리치셔야 했습니다. 등급재평가로 인해 어머니의 등급이 하향되었고 어머니는 활동보조지원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혼자 걷지도 손을 사용하는 것도 어려운 어머니를 도와드리기 위해서 온 가족이 어머니를 지키는 일에 몰두했던 시간이 떠올라 영화를 보면서 장애인 가족들과 그 형제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거리에 나올 수밖에 없었던 장애인 당사자와 가족들.. 살기 위해서 삭발을 감행해야 했던 순간까지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아니었을 농성이 잊혀 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누구 하나 똑같은 사람이 없는 세상에서 장애인을 등급제로 나눈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등급제의 범주로 묶을 수 없는 장애인의 어려움과 장애로 인한 제약에 맞게 개별화 계획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의 슬로건에 딱 맞는 영화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통틀어 많은 사람이 이 영상을 봤으면 좋겠습니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장애인의 90%가 중도장애인, 후천적 장애인인 현실에서 내 일처럼 고민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문화생산자로 거듭나기 ]
영화상영 중반부에 관객과의 대화시간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봉사 오기 전부터 장애인문화생활에 대해 관심이 있었던 터라 어떤 질문과 대답이 오갈지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장애인 문화예술단체에서 활동하시는 분도 영화제에 참석하셔서 장애인 연극의 현 상황이 어떤지에 대해서 생생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답변 중 최재호 선생님께서 새로운 사업을 계획하고 준비단계에 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영화제에 계신 많은 장애인분이 그 사업에 대해 알고 누릴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어떤 사업을 계획 중이신지, 그중 같이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추천해 주실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하게 됐습니다. 선생님은 장애인 미디어아트 공연에 관해서 설명해 주셨고, 문화적으로 소외되어 있는 장애인의 문화와 예술 활동 지원으로 적극적인 문화생산자로서 위치를 확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답변해 주셨습니다. 장애인이 문화생활로 활력을 얻고 문화소비를 넘어서 문화생산자로 거듭나기까지 많은 관심이 필요할 것입니다. 아마 문화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용이하게 바꾸는 것이 첫 번째 과정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사람, 평등, 성북 ]
성북 장애인 인권영화제는 많은 것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재활학과 학생으로서 장애에 대해 또래에 비해 잘 안다고 생각했었지만 제가 알고 있던 건 빙산의 일각 정도였습니다. 다큐멘터리 인터뷰 속 “장애는 단지 조금 불편한 게 아닙니다. 열라 힘들어요. 너무 힘들어.” 라는 말이 깊은 여운을 남겼습니다. 정책적으로 제도적으로 장애인의 필요를 채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제도적으로 장애인들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우리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의 인식이 올바른 제도를 만들 때 이용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제도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식변화를 위한 성북 장애인인권영화제가 흥행해서 영화제에 큰 획을 그었으면 좋겠습니다. 장애인뿐만 아니라 비장애인도 참여해 진정한 인식 개선이 되는 그날까지 성북 장애인인권영화제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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