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터판 동료상담가 / 정신덕
봄 소리를 말하는 듯 한 바람소리를 들으며 경기도에 있는 한 시설에서 동료상담을 하기 위해 장애인 콜택시에 내 몸을 실었다. 겨울의 찬 기운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았는데 어느새 거리엔 노오란 개나리가 새싹을 틔우며 나오고 있었다.
새로운 것을 시작한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겐 설레는 마음을 안겨준다. 밤 새 어떤 분을 만나게 될까? 그 분과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무엇을 좋아하실까? 등등 여러 가지 무수한 생각들로 내 머리는 이미 포화상태가 되어 버렸다. 이렇게 난 설렘 반과 기대 반으로 시설 상담을 시작하였다.
장애인 콜택시가 시설의 문을 들어서는 순간 무언가 가슴이 탁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오래 전 시설에서 생활했던 나의 모습을 그 속에서 잠시 스쳐지나가듯 볼 수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내담자를 만나기 위해 안내를 받으며 들어가는 순간 복도에 앉아 계시는 분들의 수많은 눈동자들이 나를 향해 한 순간에 쏠리게 되었고 난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간단한 눈인사를 대신하고 첫 내담자를 만났다. 반갑게 나를 반겨주는 내담자 분은 건강이 나빠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있다고 자신의 현재 상황을 설명하였고 너무 힘들다고 마음이 많이 슬프다고 이야기를 하신다. 그동안 너무 아파 죽만 먹어서 앉아 있을 힘도 없다는 내담자는 기쁜 일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자신의 마음을 토로했고 난 내담자의 마음에 충분한 공감을 해주면서 나의 시설 첫 상담을 마무리 하였다.
그동안 난 자립생활을 하면서 힘들거나 정보가 필요한 분들의 동료상담을 해왔다. 지역사회에서 좀 더 잘 적응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주고 때론 자립생활을 하면서의 고충이나 주변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에 관한 어려움 등을 들어주며 필요한 부분들은 함께 해결해나가는 상담을 해 왔다. 동료상담을 통해 내담자 자신들의 삶을 지역사회에서 좀 더 구축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 내가 선택한 이 길이 참 잘한 것 같다는 나름대로의 자부심을 느낄 때가 있었다.
그런데 시설 상담을 하면서 난 문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에 순간 무력감을 느끼곤 했다. 내담자의 마음을 공감해주고 지지해주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이상 아무것도 없었다.
특히 언어장애와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는 내담자를 만났을 땐 소통이 전혀 안 되는 상황인지라 나의 무력감은 더욱 깊었다. 내가 내담자의 생각을 정말 충분하게 읽어 준 것은 맞나? 내담자의 욕구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게 맞는가? 혹시 나의 생각이 내담자를 끌고 가는 것은 아닌가? 라는 질문들을 끊임없이 던지곤 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지나면서 나의 생각은 조금씩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담자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것도 해결이 안 되더라도 내담자가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 겉돌던 내담자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상담 시간에 좀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다.
소통이 잘 안 되도 자신의 삶을 보여주려고 계속 몸짓으로 보여주기 시작했고
무언가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러한 모습들을 보면서 난 지금까지 동료상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어쩌면 난 동료상담을 하면 무언가 꼭 해결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 왔던 것은 아닌가...물론 상담을 통해 눈에 보이는 실적이나 변화가 있으면 좋지만 그렇지 않아도 내담자와의 충분한 공감을 통한 미묘한 소통의 변화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동료상담은 어떤 형태로든 그 성과는 나타난 다는 것을 작년 한 해 시설 상담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올 해도 난 시설상담을 하게 되었다. 물론 내담자 중엔 작년에 이어 올해도 만나게 된 분도 있고 전혀 모르는 분도 있다. 어떤 분을 만나 든 어떤 상황이 오든 난 그 내담자에게 집중을 하려고 한다.
내가 필요한 물건을 사러 가면 그 상점의 주인은 나에게 최대한 집중을 하여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상품을 판매하려 한다. 마찬가지로 나의 내담자는 나의 고객이다. 그런 나의 고객에게 난 올 한해 초 집중을 하려고 한다. 그 내담자의 눈 짓. 손 짓. 몸동작 등 그 어떤 것도 놓치지 않고 살피며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 어떤 욕구가 있는지, 나의 지지가 필요하면 최선을 다해 해 줄 것이다. 아니 이러한 모든 것들이 없다 해도 한 공간에서 같은 시간에 함께 할 수 있는 또 다른 한 사람이 있다는 그래서 내담자의 편이 되어줄 용의가 충분히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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