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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보다도 격렬히 일하고 싶다.

소장 / 서기현
2,3년전 어느 tv광고에서는 이런 멘트가 나왔었습니다.

아무 것도 안하고 싶다.
이미 아무 것도 안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 것도 안하고 싶다.”

유명배우의 사뭇 진지한 표정과 대비되어 상당히 재미있는 광고였는데요. 멘트 자체로는 사람의 게으름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는 거지요.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게으르지 않고 싶어도, 일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 있습니다. 바로 장애인들이 그렇습니다.

작년 1121, 충무로에 있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에 장애인 백여 명이 찾아가 지사장실을 비롯한 복도와 사무실을 점거하여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내용의 첫 번째는 일을 하지 못하는 장애인들이 일을 할 수 있도록 공공일자리 1만개를 만들어 달라 라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장애인에 대해 적용되는 최저임금 제외 조항을 법률에서 제외시켜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모든 책임을 맡고 있는 한국 장애인 고용 공단을 개혁하라 라는 것이 세 번째 요구였습니다.
남산 스퀘어 11층
 서울지사의 직원들은 당황했고 그럴수록 우리는 더 소리 높여 우리의 3가지 요구를 외쳤습니다. 우리는 왜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요?
장애인의 현실은 이렇습니다. 경제지표의 하나인 고용률은 비장애인이 61%인 것에 반해 장애인은 36.1% 밖에 안 됩니다. 왜 그러냐고요? 사람들은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습니다. 일을 못한다고, 신경 써야할 것이 많다고, 돈이 안 된다고 뭐 이런 기타 등등의 이유를 대면서 말이지요. 생산성이 떨어져서 그렇다고 얘기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그들이 얘기하는 생산성은 무엇일까요?
물론 대다수의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 완전히 경쟁하며 똑같이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느리고 서툴고 번거로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같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이 같은 부지런함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면, 장애인도 일자리의 기회를 가질 수 있어야합니다.
문제인 정부는 공약으로 공공일자리 81만개를 약속했습니다. 우리는 그중 1만개의 일자리를 장애인 공공일자리로 만들라고 요구했습니다. 마음(?)같아서는 우리나라의 장애인 인구 비율인 5%로 계산하여 4만개를 요구하고 싶었지만 여러 사항을 고려하여 최소한으로 요구한 것입니다. 1만개의 공공일자리는 장애인과 관련된 공공의 영역(동료상담, 권익옹호, 인식개선, 문화예술 등)에서 활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다른 문제는 최저임금 적용제외라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있는 희한한 법조항 때문에 노동을 하고도 제대로 된 임금을 못 받는 장애인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주로 장애인 보호 작업장에서 일하는 장애인들이 겪는 일입니다. 그들은 최저임금의 8~10분의 1 수준의 돈(15~30만원)을 받고 일을 합니다. 단지 장애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그렇습니다.

문제가 되는 법은 이렇습니다.
"정신 또는 신체의 장애가 업무 수행에 직접적으로 현저한 지장을 주는 것이 명백하다고 인정되는 사람으로서 사용자가 고용노동부장관의 인가를 받은 사람에 대해서는 최저임금의 효력규정 (최저임금법6)을 적용하지 않습니다(최저임금법7조 및 최저임금법 시행령6)."

장애인이라고 정의되는 것도 차별적인 발상인데 법에 의하여 공식적으로 '일할 수 있는 능력이 현저히 없는 사람'으로 낙인을 찍는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돈도 조금 밖에 못 받습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그렇게라도 돈을 받는 게 어디냐고, 그 조항이 없으면 그나마 있던 직장이 없어질 것이라고... 그런데 말입니다. 그들에게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한 달에 30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살 수 있냐고, 당신들이 '현저히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낙인을 찍는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유(사고나 질병, 노화 등)로 당신 또는 당신의 가족이 될 수 있음을 왜 모르냐고.

그래서 우리는 지난겨울 내내 그곳을 지켰습니다. 우리와 뜻을 함께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지켰습니다. 불법 점거이니 즉각 나가라고 협박하는 공문도 받았고, 우리의 뜻을 내결었던 큰 현수막을 빼앗겨 한바탕 찾으려는 실랑이도 벌였습니다.
그렇게 버티니까 겨우, 85일 만에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우리를 만나주었고 우리가 요구했던 3가지 사항을 검토하고 개선하겠다는 약속을 해주었습니다. '공공일자리 TF(협의체)’ ,’최저임금적용제외 개선 TF'를 구성하여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 약속을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그 협의체는 열심히 회의를 하고 있습니다. 들리는 얘기는 각 부처에서는 우리의 뜻을 받아서 예산을 올리면 '기획재정부'가 그 예산을 자를 수 있을 것이라고 엄살 아닌 엄살을 부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걸림돌이 많은 것은 이미 예상하던 것입니다. 이것은 시작입니다. 아무리 산 넘어 산이어도, 강 건너 강이어도, 넘고 또 넘고, 건너고 또 건너면 됩니다.
이종광 활동가
그 누구보다도 더 격렬하게 일하고 싶은 장애인들의 목소리, 안 들리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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