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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활동지원사 박. 영.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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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활동지원사 박. . .

활동지원사 / 박영길
제목: 위험한 전동휠체어

20171020일 지하철 1,5호선 신길역에서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지하철을 타기위해 리프트를 호출하던 중 높은 계단에서 추락하여 사망한 사고가 있었다.
이후 최근까지 신길역을 거점으로 하여 엘리베이터를 설치해달라며 장애인들이 집회를 하고 있다. 전동휠체어는 장애인들이 이용하는 이동수단 중 편리한 도구이기도 하지만,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았다가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이용자 본인이나 주변사람들을 다치게 하고 심지어 죽음에 이르게까지 할 수도 있는 위험한 무기가 된다. 이와 관련한 몇 가지 웃지 못 할 에피소드를 말하려 한다.

불과 몇 년 전 불광동에서 있었던 일이다. 3호선 지하철을 타고나와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했다. 휠체어를 탄 이용자(수급자)는 신호 대기 중에 보도 블럭의 턱 끝선에서 열심히 스마트폰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 이용자는 신호가 바뀌자 휠체어를 전진하였고 곧바로 바닥으로 꼬꾸라져 나뒹굴어졌으며, 그의 머리가 아스팔트 바닥에 쿵하고 부딪히려는 순간 나와 옆에 있던 사람들의 총알 같은 동작으로 간신히 큰 사고를 예방했으며, 그 사이에는 내 손바닥이 그의 머리를 받치고 있었다.
어제는 길음역에서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기 직전 보도 블럭 끝선에 스마트폰 정지선이라는 경고글귀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보았다.
비장애인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이동하던 중에는 오로지 운전에만 열중해야지 스마트폰에 열중하게 되면 나도 큰 사고를 당할 수 있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큰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될 것이다.

두 번째는 30대 초 남성 장애인의 이야기다.
그는 매주 1회 서울, 경기지역의 놀이공원이나 테마파크에 다녀오곤 한다.
센터사람들과 체험홈 사람들이 말해주기로는 준수씨가 내가 오는 날이면 얼굴이 굉장히 밝아지고 좋아진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와 같이 있으면 항상 웃음이 멈추지 않는 일이 많이 생기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러던 어느 날 테마파크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서울대입구역에서 내려 밖에서 저녁식사를 하려고 할 때였다.
역에서 집까지는 1km가 넘고, 집의 위치도 산꼭대기 인데다가, 절반 이상이나 힘들여 올라가도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식당은 없었다.
간신히 식당을 찾아 들어가는데 입구 쪽에 있는 테이블에서 젊은 사람이 혼자 식사를 하고 있었고 이 때문에 식당 안쪽으로 들어가는데 휠체어가 방향을 잡기가 매우 어려웠다.
아마도 그 젊은 사람이 5cm정도만 테이블을 살짝 움직여주면 좋았겠지만 그는 그냥 바라만보며 식사만 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우리 이용자는 조심스레 휠체어 조종기를 운전하였고 그러던 중 휠체어 위 이용자 앞에 깔려있던 테이블용 깔판이 밀려 컨트롤 박스를 덮치게 되었고, 이에 놀란 이용자는 조종기를 놓치고, 밀린 테이블용 깔판이 조종기를 누른 채 4단에서 속도를 내며 전진 해버렸다.
내가 앞에서 막아봤지만 휠체어는 나마저도 덮쳤고, 홀에 있는 테이블 4~5개를 밀쳐내고 넘어트리고 나서야 간신히 멈춰 섰다. 이에 내 양발 무릎과 정강이 부위가 바지 속에서도 여기저기 긁히고 찢겨져 피가 질질 흘러내렸다.
관심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다루면 편리하고 안전한 전동휠체어는 오늘 괴물이 되어 나를 덮치고 식당내부를 와장창 망가트렸다.
그래도 우리는 킥킥거리며 산꼭대기에 있는 집으로 올라갔다.

제목 : 감동의 메시지

얼마 전 20181019일 서울 여성 프라자에서 열린 한자협 창립 15주년 기념식에서 한 여성장애인이 큰 상을 받고 수상소감을 말하는데 첫마디가 본인의 활동지원사에게 감사하다는 말부터 시작하였다. 이에 행사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의아해 하는 모습으로 다들 크게 놀라워하였고, 나 또한 크게 감동의 메시지를 받았다.
눈을 크게 뜨고 의아해 하는 모습은 활동지원사가 무엇을 그리 고맙게 잘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아니라 이런 공식적인 석상에서 그것도 수상소감을 말하는 첫마디가 활동보조사에게 고맙고 감사하다 라는 말을 한다는 데에 크게 놀랍고 감명을 받았을 것이다.

나도 활동지원사 일을 4년째 하고 있지만 내 주변이나 내가 직접 담당했던 장애인 중에 어떤 사람은 활동지원사를 정말로 자기의 부모형제나 친 가족처럼 따뜻하게 대하고 자기활동을 도와주는 것에 항상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하며 정이 많이 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와 반대로 활동지원사를 자기개인의 노예나 종처럼 인식하고 쌀쌀맞고 정 떨어지게 대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현재 내가 다니고 있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 사무실에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30대 중반 남성의 장애인 활동가가 있다.
지난번에도 사무실 직원들 고생이 많다고 어머니께서 베푸는 것이라며 무한리필 고기집 에서 50만 원 정도를 푸짐하게 대접한 적이 있었다. 알게 모르게 활동지원사들에게도 따뜻하고 정감 있게 대해줘서 아주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인식되어 있다.

수상소감에서 활동지원사에게 감사하다고 했던 인사말에는 큰 감동이면서 동시에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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