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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장애인의 참정권)


소장/서기현
613. 세계의 시선이 북미회담 때문에 싱가포르에 실려 있는 동안 우리나라의 지방선거는 끝이 났습니다. 결과는 아시다시피 여당의 압승이었죠. 전통적인 야당의 강세지역이었던 PK(부산, 울산, 경남)이 뒤집어졌고 TK(대구경북)은 아직도...(에휴...) 그래도 TK에서 야당과 여당의 격차는 과거보다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 언젠가는 달라지겠죠. 혹시라도 제가 여당 편을 드는 것 같다고요? ... 아닙니다. 기분 탓일 겁니다. 그래도(?) 이번 선거의 결과는 아주 좋습니다. ㅋㅋ

하지만 그런 떠들썩한 한바탕 굿거리에 초대받지 못한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장애인들이지요. 일단 어느 선거이든 투표를 하려면 누가 출마했는지, 공약은 무엇인지, 전과는 없는지, 알아야합니다. 인터넷이나 TV를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나라에서는 공보물이라는 것을 주게 됩니다. 그것을 보고 잘 판단해보라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시각장애인이나 발달장애인에게는 무용지물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시각장애인들은 일반적인 인쇄물을 보지 못합니다. 약시의 경우에는 글자를 많이 확대해야 볼 수 있으며, 시각능력을 전부 잃은 전맹 시각장애인의 경우에는 점자문서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제공해야 한다는 법률이 몇 년 전에 재정되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법률 자체도 부실하여 점자의 크기가 일반적인 문자보다 훨씬 큼에도 불구하고 일반공보물과 점자공보물의 쪽수를 같게 만들어 점자공보물에는 부실한 정보가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일반공보물에는 들어가 있는 공약이 빠져있다든지 하는 문제가 발생이 되고 있습니다. 이는 명백한 장애인 차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발달장애인들에게는 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많은 경우에 한글을 읽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의사소통도 쉽지가 않아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원천적으로 얻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들을 위한 공보물은 보다 쉽고 글자보다는 그림으로 만들어서 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한 공식적인 움직임은 아직 없는 상태입니다. 이것 또한 발달장애인에 대한 차별입니다.
어쨋든 어찌저찌해서 후보자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서, 또는 그 정보를 모르는 상태로 투표장에 간다고 해도 투표를 쉽게 할 수는 없습니다. 일단 적지 않은 투표소가 엘리베이터나 경사로가 없는 장소에 설치가 되어 휠체어장애인이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곤 합니다. 그럴 때는 선관위 직원이 나와서 휠체어를 들어주거나 투표소 입구에 간이 기표소를 설치하여 투표를 하게끔 합니다. 어느 경우도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편의시설이 잘 된 투표소에 들어가도 문제는 여전히 있습니다. 손이 불편한 장애인들은 투표용지에 기표가 도구로 표시를 하는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래서 특별한 도구를 쓰거나, 활동지원사 또는 가족이 도와주어야 합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입에 무는 기표 도구를 써서 투표를 하였으나, 그 도구를 받기까지 한 시간 넘게 걸렸습니다. 그것을 찾느라 허둥지둥 댄 것이지요. 그렇게 다른 도구도 쓰기 어려운 경우에는 곁에서 누군가가 도와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선관위 직원들에 의해 제지당하곤 합니다. 그런 상황도 투표소마다 다르게 적용되어 어느 곳은 되고, 어느 곳은 안 되고 일관성이 없이 직원의 성향에 따라 달라지곤 합니다. 명확한 배려와 기준이 확실한 규정으로 정해져야 하는 부분입니다.

지금까지는 투표하는 입장에서 말씀을 드렸다면 지금부터는 투표를 당하는 입장 즉 선거에 출마하는 상황을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이번 지방선거에 장애인으로써 출마한 많은 분들이 공통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은 선거운동 과정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여 선거법에 명시된 선거 방법 및 형식에서 마땅한 배려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활동보조인과 함께 선거운동을 못하게 한다거나 언어장애가 있음에도 AAC(대체의사소통보조기기)를 못쓰게 하거나... 일일이 얘기하면 기니까 그런 사례는 셀 수조차 없이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지역주민들에게 효과적으로 홍보할 수가 없어서 후보로써의 경쟁력이 비장애인 후보들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등록장애인 기준으로 장애인의 인구는 5%를 약간 넘습니다. 그러나 의회나 선출직 지방 공무원에 진출한 장애인은 아주 적습니다. 그러다보니 장애인의 목소리가 현실정치에 반영이 될 리가 없겠지요.

그렇다면 장애인들이 정치판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앞서 언급한 선거에서의 어려움도 개선해야겠지만 정당의 배려와 제도적인 변화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우리 선거제도에는 각 지역을 대표하는 의원들을 뽑기도 하지만 정당에 투표하여 그 비율만큼 의원을 할당하는 비례대표제도가 있습니다. 물론 각 정당이 득표를 많이 해야 많은 비례대표를 당선시킬 수 있지만 의원 개개인의 입장에서는 비례대표우선순위가 높아야 당선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래서 각 정당에서는 사회적 소수자를 대표하는 인물들을 비례대표 후보자로 추천을 합니다. 그러나 그 자리마저 장애인은 할당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여야 할 것 없이 이 부분은 많은 개선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것은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한데 그 이유는 선출직 의원에 비해 비례대표 의원의 비율이 비정상적으로 적은 문제이기도 합니다. 선출직이 90명이라면 비례대표는 10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정당득표가 아무리 많아도 비례대표의 표는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비례할당이 적은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바꾸려면 비례대표를 50%이상으로 늘려야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선거제도 문제점 중에 하나가 바로 소선거구제에 있습니다. 이것이 어떤 경우냐 하면 지역을 최대한 작게 구분한 다음에 그 지역에서 득표를 제일 많이 한 사람만 당선이 되는 제도입니다. 이러한 제도에서는 49%로 낙선할 수 있고 후보가 많은 경우에는 30% 이하를 득표해도 당선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지역민심을 심각하게 왜곡할 수도 있는 여지가 큽니다. 예를 들어 이번 지방선거의 서울지역 시의원 당선상황을 보면 정당득표는 여야의 비율이 73이어서 그것이 의원 수에 반영이 된다면 70명대 30명이 되어야하겠지만 실제로는 여당이 97명 야당이 3명의 비율로 당선이 되었습니다. 물론 선거에서 야당이 진 결과이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인물이 아닌 정당을 선택하여 그 정당이 정책을 지지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민심의 왜곡은 당연해 보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앞서 이야기한 비례대표의 비율을 늘리는 하나의 방법이고 또 하나의 방법은 중선거구제를 도입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이 제도는 소선거구제보다 조금 넓게 선거구를 나누고 득표결과 1등만 당선시키는 것이 아니라 득표율에 따라 23등도 당선이 가능한 제도입니다. 이것은 후보자 개인이 아닌 정당지지율을 그대로 의원 수에 반영시킬 수 있는 방법입니다. 이렇게 되면 각 정당에서는 사회적으로 소외를 받는 계층을 대표하는 후보를 전략적으로 공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1등만 당선 되는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배려와 제도개선이 이루어져야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들이 정치에 들어올 수 있는 여지가 마련이 될 것이고 그래야 그들의 목소리와 우리사회에서 힘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아직도 우리나라의 정치상황은 비장애인 남성위주입니다. 이번 지방선거의 결과도 마찬가지입니다. 광역단체장의 100% 가 비장애인 남성이고 기초단체장은 일부가 여성이지만 극히 적고 역시나 장애인은 없습니다. 각 지자체의 시의원이나 구의원도 장애인은 열손가락에 꼽을 정도입니다. 그 비율은 0.01%도 안 될 것입니다.
장애인의 참정권은 이렇게 열악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고민과 협조가 있다면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참정권은 기본적인 권리입니다. 장애인이라고 예외일 수 없습니다.

함께 고민하고 행동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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